2004년 하청업체 127곳 불법 판정
사업폐쇄 등 행정처분 가능한데도
몇년째 현대차에 “법 지켜라” 말뿐
시민단체, 노동부에 시정명령 촉구
고용노동부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법을 지키라”며 연일 현대차 사쪽을 압박하고 있지만, 정작 불법파견에 대해 아무런 행정처분도 하지 않는 등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은수미 의원(민주통합당)이 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노동부는 2004년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 127개 하청업체 모두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하고도 경찰 고발 말고는 8년 동안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특히 울산공장 15곳의 하청업체는 지금까지 업체이름이나 대표이사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나머지 업체들도 이름만 바뀌었지 현대차에서 맡고 있는 일이나 직원들은 기존과 유사하다.
파견법(19조)에는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근로자 파견 사업을 계속하면 관계 공무원으로 하여금 당해 사업을 폐쇄하기 위해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불법이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행정처분 권한을 노동부에 준 것이다. 현대차 하청업체들은 겉으로는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에서 정부의 허가 없이 파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던 만큼 사업 폐쇄가 가능하다.
최근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에서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을 뒷받침하는 판결·결정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노동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대법원은 올해 2월 사내하청노동자 최병승씨를 현대차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최씨가 2002~2005년 다녔던 사내하청 업체 예성기업을 불법파견 업체로 봤다. 예성기업은 현재 ㅅ기업으로 업체이름이 바뀌었지만 실제 업무는 유사하다. 노동문제를 다루는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도 ㅅ기업을 비롯한 울산공장 하청업체 22곳(지난해 12월), 아산공장 6곳(올 6월), 전주공장 8곳(올 3월)을 불법파견 업체로 판단했다. 2010년 11월 서울고법은 아산공장 5곳을 불법파견 업체로 판결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업체 124곳(2012년 6월 기준) 가운데 41곳이 (준)사법기관에서 다시 한번 불법파견으로 확인된 셈이다.
이채필 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발언한 데 이어, 지난 22일 울산 노사민정 간담회에서도 “현대차가 법원과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직접고용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정부가 말로만 현대차를 비판하고 실제로는 불법행위를 방치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현대차는 불법파견 은폐에 나서고 있다. 사법기관에서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한 하청업체 등은 우선적으로 폐쇄 조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15일 “2004년 불법파견 판정 뒤 노동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내용이 담긴 공개질의서를 노동부에 보내기도 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업체 폐쇄를 하면 하청근로자의 일자리 문제도 영향을 받게 돼 어려움이 크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은수미 의원은 “정부가 업체 폐쇄 조처를 하기 전에 불법행위를 해결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리면 된다. 현대차는 업체 폐쇄로 생산 차질 등 큰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어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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