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다. 결론은 ‘합헌’. 근거는 “내국인근로자의 고용기회 보호와 중소기업의 인력부족 해소”를 위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최대 4번까지는 허용하고 있으니 그 정도의 제한은 명백히 불합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정문에 대한 평석은 ‘빚진 마음’으로 다음의 적절한 기회로 미룬다. 우선 현장에서 이 문제의 실체와 대면하며, 계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활동가들에게 미안한 마음만을 먼저 밝혀둔다. 

다만 결정문을 보고 떠올랐던 단 한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내국인근로자의 고용기회 보호와 중소기업의 인력부족 해소.” 이 간단한 몇 마디의 말에 이주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험과 인식, 그 한계가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었다. 현행 사업장 변경 제도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은 내국인을 고용할 수 없는 업종과 업체로 제한된다. 따라서 사업장 변경 제한은 이주노동자의 저임금을 강제하는 장치일 뿐 “내국인근로자의 고용기회 보호”와는 전혀 논리적 관련성이 없는 것이다. 그 제도는 내국인 근로자가 아니라 강제된 저임금으로 외국인을 고용하고자 하는 사업주만을 보호하는 제도인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는 내국인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업장 변경을 제한한다는 명제가 더 이상의 논리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확고한 전제로서 전혀 의심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뿌리 깊은 하나의 신화였다.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고용허가제에 대한 헌법소원은 뿌리 깊은 '신화'를 '논리'와 '법리'로 넘어서겠다는 무모한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2. 
아비바 촘스키의 책,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전략과 문화)는 ‘아메리카 드림’을 구성하는 인종주의적 신화와 편견을 고발한다. 인종주의를 정의하는 방식 중 하나는 ‘대중에게 기쁨을 주는 신화’라는 것이다. ‘신화’는 희생양을 만들어,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이용한다. 촘스키는 미국 사회에서 수용되고 있는 21개의 이민자 관련 신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교착상태에 빠진 미국의 인종 문제 논쟁에 실천적으로 개입한다. 

‘이민자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신화 1), ‘이민자는 미숙련 노동자와 경쟁하여 임금을 하락시킨다.’(신화 2), ‘노조는 노동자계급에게 해가 되기 때문에 이민에 반대한다.’(신화 3), ‘이민자는 동화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 문화를 위협하고 있다’(신화 12), ‘불법이민으로 법을 어긴 사람들은 범죄자이므로, 추방되어야한다.’(신화 20) 등 이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신화들은 대부분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도 논쟁적인 문제들이다. 

이 책에서 촘스키가 21개의 신화에 접근하는 기본 관점은 두 가지다. 첫째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라는 것이고, 둘째 미국의 인종주의적 역사에서 ‘불법’과 ‘불평등’을 만든 것이 바로 ‘법’이었다는 것이다. 

3. 
촘스키가 21개의 인종적 신화 모두에 대하여 반박의 여지없이 분명하게 분석을 제시하고 있는지 여부는 읽는 사람들마다 평가를 달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논쟁적인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통계와 역사자료에 근거하여 쉬운 언어로 설명하는 실천적인 방식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특히 아비바 촘스키가 첫 번째 신화(‘이민자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에 접근하는 방식은 매우 근본적이다. '미국민의 일자리'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지적이 하나고, 사람들의 수가 일자리의 수를 결정한다는 전제가 논리적 오류임을 지적하는 것이 또 하나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타당한 지적이지만, 역사와 경험, 제도가 다른 우리 사회에 적용 가능한 접근 방식으로는 여전히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 변형된 형태로 존재하는 신화와의 대면이 필요하다. 이주 문제의 핵심은 위와 같은 인종적․제도적 '신화‘와의 싸움에 있다. 촘스키가 진행한 방식으로, 한국사회의 이주민에 관한 인식이 뿌리내리고 있는 민족적, 인종적 신화를 드러내고 대결하는 실천적 작업이 기다려진다. 다만 그 싸움의 관건은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지는 매끈한 이론과 통계에 있지 않다. 신화에 맞서는 것은 ‘이론’이라기보다는 문제의 실체와 계속적으로 대면하는 현실의 '삶'이고 ‘운동’이다. 소문만 무성한 '신화'의 실체에 대면하는 싸움이, 현장을 지키는 활동가들에 의해 우리의 관점과 언어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믿고 기대를 가져본다. 

글 _ 정정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