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다보지 말고 마주보기

44호:기억해야할 지나침/이주노동자 2011/09/17 17:29
여울 수습편집위원 yeoulim@gmail.com
자기 수습편집위원 ari.amoryou@gmail.com

우리는 같은 고민을 한다.

 주변에 해외로 인턴십을 다녀온 친구들이 있다. 취직을 준비하는 선배들을 보면 국내에 있는 외국계 기업뿐 아니라 아예 해외에서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대 학생들이 구하고자 하는 직업은 더 이상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워낙에 국내 취업 여건이 좋지 않고, 언어장벽만 문제 되지 않는다면 외국에서 일하는 것이 물질적으로도 노동 환경적으로도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도 꾸준히 해외 취업을 장려해오고 있다. 내 주위에도 많은 꿈 많은 젊은이들이 외국행을 결심한다.

 
  국내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들의 60%가 20대이며, 평균연령은 29.8세이다. 이들의 체류기간을 고려해 한국에 들어올 때의 진입 연령대를 추산해보면 이주노동자들의 대다수가 20대 때 한국에 온다는 걸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읽고 있는 우리와 비슷한 나이 또래에 한국에 올 결심을 하게 된다. 학력수준을 보아도 고졸 이상이 80%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아시아권 국가의 평균적인 학력수준을 고려해 본다면 못해도 중상위권에 해당한다. 어느 정도의 학력 수준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한국은 만리타향이긴 해도 본국보다 더 좋은 임금수준을 기대할 수 있는,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매력적인 직장이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고, 심지어 한국에 가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게 될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한국에 오는 것에 대한 불안이 없을 리 만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당차게 한국행을 결심한다. 한국으로 오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하고,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한다. 앞날에 대한 고민과 도전은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누사의 한국원정은 결코 우리에게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한국에서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아시아권 이주노동자들이 가고자 하는 나라는 다르다. 아마 그 나라에 가서 하게 될 일도 다를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이주노동자들의 나라보다 경제수준, 학력수준이 높아 양쪽에게 주어지는 (취업분야의) 기회가 다르기 때문이다. 덕분에 두 종류의 해외취업자들에 대한 평가도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취직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하다는 눈길을 보내는 반면, 우리나라로 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돈 벌러 온 저급 인력 이상의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들과 우리의 처지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는데, 겉으로 보이는 조건의 차이들 때문에 이들의 결심이나 꿈마저 저평가되는 것은 부당하지 않을까?
 
 세상의 20대들은 같은 고민을 한다.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앞날에 대고 젊음을 배팅하기도 한다. 본인들의 앞날을 위해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서 두렵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해외 취업의 문을 두드린다. 우리는 다른 높낮이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는 정말 우리 일자리를 뺏으러 오는 걸까?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편견들 중 하나가 이들의 값싼 노동력으로 인해 내국인들의 고용이 줄어들게 되어 실업률 증가에 한 몫 한다는 의견이다. 이주노동자 관련 웹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이런 내용을 호소하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다음의 그래프에 의하면, 통계청의 조사결과 중소제조업체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이유 중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79%) 차지하는 것은 바로 ‘내국인 근로자 구인곤란’이다. 중소제조업체는 이주노동자의 절대 다수가(국외동포를 제외한 등록 이주노동자 가운데 97.2%)1 종사하고 있는 직장이다. 앞서의 주장과는 다르게 이주노동자가 내국인의 일자리를 뺏으러 오는 게 아니라, 인력을 아무리 구하려고 해도 국내에서는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제조 산업 분야에서 이주노동자 고용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할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가 대다수라는 것은 애초부터 고용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분야에서 이주노동자의 고용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말이 나왔으니 국내 제조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제조업체의 인력 부족, 그중에서도 중소제조업체의 인력부족은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으며 현재에는 부족한 인력이 10만 명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때문에 제조업 분야에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수요가 절대적으로 높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유일한 경우이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를 받는 국가들- 서구 유럽이나 미국, 동북아시아, 호주 등지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주노동자의 수요가 이동했기 때문에 중장년 여성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제조업이 국내 산업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고, 이에 관련된 단순인력 종사자를 주로 구하므로 젊은 남성노동자들을 필요로 한다. 

  안타깝게도 인력부족난에 시달리는 중소제조업체에 취직하고자 하는 내국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부분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내국인 구직자들은 ‘공장에서 일한다’는 자체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규모 제조업체의 경우 더 높은 임금과 노동환경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내국인 고용이 가능하지만,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들의 규모는 30인 미만인 경우가 78%, 10인 미만인 경우가 44%에 달한다. 물론 중소제조업체도 내국인 구직자를 선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조업 먹이사슬의 하위에 속하는 중소제조업체에서 내국인 구직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만큼의 임금을 제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이주노동자들이 멀리서 날아오게 되는 것은 국내 제조업체의 현실상 조건에 맞는 내국인을 고용하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돈을 벌려고 오는 것은 틀림없지만, 사실은 내국인들이 일하고 싶지 않아 하는 한국 노동시장의 구멍 난 곳에서 인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먼 바다를 건너오게 된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우리나라까지 와서 돈을 쪽쪽 빨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싫다고 내팽개친 국내 산업에 묵묵히 종사하면서 제조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나라에서 와서 그들만의 이익을 챙기고 떠날 타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함께 일궈나가는 ‘한국사회의 구성원’이다.


해치지 않아요. 해치지 말아요.

  지난 2011년 7월22일, 노벨 평화상 수여국 노르웨이에서 전대미문의 테러가 발생했다. 오슬로의 도심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졌다.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이질적인 굉음이었다. 같은 시간, 오슬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우토야 섬에서 집회를 가지고 있던 노동당 청소년 캠프의 참석자들도 무차별 총기난사를 당했고 그 와중에 76명이 죽었다. 명백한 테러였다. 수 시간 후 밝혀진 테러범은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이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당시, 테러 주범이 밝혀지기 전까지 노르웨이의 여타 신문들이 미리 준비했던 기사의 주인공은 실제와는 정반대의 ‘무슬림 과격 테러리스트’들이었다. 대부분의 유럽과 마찬가지로 노르웨이 역시 내국인들의 절대다수가 기독교를 믿는다. 반면 이주민들은 다양한 종교를 가지는데, 이슬람교 역시 이주민들의 종교에 포함된다. 테러범은 다문화주의 비판에 앞장서며 전 세계를 향해 이슬람과의 싸움을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범인이 밝혀지고 난 후, 언론들은 일제히 기사를 새로 써야 했다. 이주민들에 대한 편견은 극악무도한 테러범만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다분히 이성적인 일반 언론들에게조차 보편적으로 흐르는 정서였다. 노르웨이에서조차, 평화는 모두에게 공유되는 것이 아닌 듯 했다. 

  세상이 돈 세상으로 바뀌어 오면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사는 나라마저 등진 채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가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주민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약 3%에 해당하는 1억 5천만 명이, 매년 새롭게 2백만에서 3백만 명이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주노동은 이제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서구의 국가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이주노동자들을 받아왔고, 우리보다 먼저부터 다문화정책을 펼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민들이 새로운 땅에 정착해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별은 알량한 정책들로는 걷히지 않았다. 사소한 문화적 차이부터 시작해서,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지원들,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직장, 오를 수 있는 지위, 자신이 살고 싶은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에도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주민들의 유입국에서 그들을 제도적으로 배척하지 않았다 해도, 이주민들의 게토2화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게토는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고, 많은 내국인들은 이를 이주민들을 받아들이지 못한 정부와 사회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그 집단의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습성으로 인식하고 경계했다. 반 다문화주의자 브레이빅의 테러는 이주민들에 대한 이런 시선들이 폭발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주민들에 대한 경계는 ‘나와 다름’에 대한 낯섦의 수준을 넘어선다. 이주노동자는 위험한 사람들이고 피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심지어 그들은 없어져야 한다는 폭력적인 말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의심도 없이 이야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상한 일이다. 그들의 직업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이지 갱스터가 아닌데. 바다 건너 왔다는 사실만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위험하게 변한다는 걸까. 그리고 이런 시선들은 왜 바다 건너온 모든 이에게 해당되지 않고 오로지 아시아권 이주노동자들에게만 향해있는 걸까.

 
 실제로 검찰청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의 범죄율은 한국인들의 수치에만도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범죄는 우리가 내려다보는 아시아권 사람들이 아닌 선진국에서 온 이주민들에게서 발생한다. 보수언론들이 제시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범죄 횟수 증가추이 역시 국내로 유입되는 이주노동자 증가율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딱히 ‘위험한 집단’이라고 분류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통계수치다. 이들은 ‘위험한 사람들’이라기보다 낯선 한국인들의 경계어린 시선에 상처받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고통 받으면서 별다른 제도적 차원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위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차별이 계속되고, 정부의 정책이 그들을 지금의 위태로운 상황으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들과 그 자녀들 역시 한국사회의 빈민층, 한국의 게토를 형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들에 대한 사회적 부담은 장기적으로 고스란히 내국인들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올 피해에 짜증내며 노르웨이의 테러범처럼 총을 들어야 하는 건가, 차별을 없애고 그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하는 건가. 별 생각 없이 위험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나를 해칠까봐 싫어했던 그들을, 오히려 우리가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몽땅 다!문화 

 우리나라는 얼마나 글로벌한 문화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알고는 있고, 서구의 문화는 매체들 속에서 정말 많이들 접하고 있으니 그 또한 친숙하다. 그러나 그게 정말 글로벌의 전부일까?

  이주노동자분들을 인터뷰해본 결과 종교생활을 이해해주는 사업장은 거의 전무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종교들을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받아 들여왔던 유교나 불교, 그리고 서구로부터 전해져온 가톨릭과 개신교 정도가 있겠고, 딱 이 정도 선에서만 종교를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마저도 우리나라에서는 종교를 갖지 않고 있는 사람도 많아서 ‘종교’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이 크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종교생활 같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중간에 멈춘다는 것은 쉽게 용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슬람교의 경우 이들의 예배일은 평일인 금요일이지만 대다수의 한국인 고용주들은 일 끝나고 하거나 휴일에 가면 되지 않느냐며 멋대로 잘 알지도 못하는 종교의 규칙을 바꿔버린다. 그러나 몇몇 종교국가들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이들에게 종교가 갖는 의미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이슬람, 불교, 유교, 힌두교 등.(그 밖에도 많다!) 어떤 이들의 나라에서 종교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부이기도 하다.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올리는 일이 우리에겐 정말 생소하고 쓰잘 데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일생을 지켜온 삶의 일부일 수 있다. 

 사소한 일상생활 속, 우리에겐 당연한 일들이 만리타향에서 온 그들에게는 삶의 위협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이주노동자 분은 따뜻한 남국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처음 한국에 와서 추운 겨울을 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고, 어떤 분은 채식을 하는데 식단에 돼지고기가3 포함되어 있어서 맨밥만 먹은 적도 많았다고 했다. 그 밖에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문화 충격이 존재한다. 우리도 해외에 나가면 컬처 쇼크를 경험하듯이 이주노동자들도 똑같이 한국에서 살아갈 때 겪는 문화적/환경적 충격이 크다. 불행히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충격들을 허심탄회하게 공유하고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한국 스타일을 그대로 적용시키려하기 때문에 우리가 되려 컬처 쇼크를 받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난다. 코코넛 기름으로 멋을 낸 이주노동자의 헤어스타일은 한국인의 눈에는 그저 기름 좔좔 흐르는 이해할 수 없는 스타일로 보이겠지만 그들에게는 더운 여름날 머리를 식혀주는 과학적인 마사지다. 화해하고 싶어서 술을 권했을 때 절대 마시지 않고, 인심 쓴답시고 고기를 쏘는데 입에도 안 댄다면 한국의 직장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당황스럽고 괘씸하게 여겨지겠지만 실상은 진짜로 못 먹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와 다른 이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고 이들의 삶의 방식을 알아갈 수 있다면 일상에서 쌓인 오해들은 쉽게 녹아 없어질 것이다. 이것이 먼 나라에서 와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는지. 

  덧붙여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일차적으로 겪게 되는 어려움은 아마 ‘언어’일 것이다. 친절하게 한국말을 가르쳐 주는 것은 쉽지 않다 하더라도, 왜 사장님들은 본인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믹스해 주는지 알 수가 없다. 과거(2004년 이전)에 비해 신체적 폭행은 1.7%로 크게 감소한 반면,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이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21.7%로 높았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들일수록 나쁜 말들은 가슴에 더 박히게 되지 않을까. 외국에 가서 단어 몇 개 모르는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개xx야’ 따위의 욕설이라면 너무 속상할 것 같다. 우리는 좀 더 고급스럽게 대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주노동자들과 그들의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창시절에서부터 줄곧 들어온 서구문명국가에서 온 사람들보다 문화적으로 낯선 이들에게 좀 더 거리감을 느낄 수는 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에게 문화가 없다고, 이들의 것은 문화가 아니라고 무시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이주노동자 역시 본인들의 삶과 문화를 가진,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낯설다고 시선을 거두는 대신, 서로의 문화를 함께 만끽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다~문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1. 고용허가제는 일반 고용허가제(E-9)과 특례 고용허가제(=방문 취업제, H-2)로 나뉘며, 일반 고용허가제는 아시아권 전역에서 오는 이주노동자를, 특례노동자의 경우 조선족이나 고려인 등 국외동포만을 대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이주노동자는 국외동포를 포함하여 통칭하나, 기획에서는 이주노동자와 국외동포가 처한 상황이 다름을 고려하여 국외 동포가 아닌 이주노동자, 즉 일반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오게 되는 경우만을 다룬다. [본문으로]
  2. 게토 (Ghetto)게토 는 소수 인종이나 소수 민족, 또는 소수 종교집단이 거주하는 도시 안의 한 구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빈민가를 형성하며 사회, 경제적인 압박을 받는다. [본문으로]
  3.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를, 힌두교에서는 소고기를 먹는 것을 금기시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