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고용 허가제

44호:기억해야할 지나침/이주노동자 2011/09/17 17:29
여울 수습편집위원 yeoulim@gmail.com
자기 수습편집위원 ari.amoryou@gmail.com

 한국이 이주노동자 유입국가로서 본격적으로 노동이주정책을 실시한 지 이제 15년이 지났다. 2004년, 악명 높던 산업연수생제도1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 속에서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


왜 이렇게 한국 오기가 힘드니

 고용허가제 비자를 받고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오려면
 1. 한국어능력 시험을 통과하고, 
 2. 구직리스트에 올라 한국에서 사업장 신청을 한 사장님으로부터 계약 제안을 받으면 끝이다. 글로는 채 두 줄이 안 되는 가볍디가벼운 절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어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3~6개월 간 한국어학원에 다녀야 한다. 한국어 실력을 쌓았다고 다가 아니다. 현재 외국에서 고용허가제 비자는 굉장히 인기가 높고, 따라서 한국어 시험 응시에도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산업연수생 제도 폐지로 인해 브로커의 직접적인 거래(한국 내 취직 알선)는 거의 사라졌지만, 시험 응시나 구직리스트 신청에 다시금 브로커가 개입될 정도로 한국을 향하는 문은 비좁기 그지없다. 게다가 구직리스트에 오르기까지 투자하게 되는 시간적/금전적 비용은 그 나라에서 몇 년을 일하더라도 갚지 못할 만큼 상당하다. 구직리스트에 오른 후보들의 경우 한국에 가야지만 투자비용을 제대로 거둘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좁은 문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고용허가제 제도는 사업장 신청을 한 업체에서 구직리스트에 오른 후보들을 선택해 계약서를 건네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 후보들의 입장에서는 계약서가 날아오기만을 기다릴 수 있을 뿐, 사업장을 조회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이주인권센터 인터뷰에 의하면 이주노동자 후보들이 구직리스트에 오른 이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길게는 6개월에서 1년까지도 걸리므로,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계약이 굉장히 절실해지게 된다. 정보가 불균등한 상황에서 기다리던 계약서를 받아들게 되면 근로환경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계약을 승낙하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리고 그 대다수의 사람들은 본인들이 어떤 불리한 고용조건을 승낙한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왜 이렇게 일이 험하니

 대구·경북 고용지원센터에서 실시한 조사(2007)에 따르면 대구·경북지역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입국한 후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발생하기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1.9년이었다. 그리고 전체의 49.7%가 한국에 입국한 지 1년 안에 산재를 당하였다. 일하러 와서 다치는 사람이 절반인 셈이다.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는 ‘기계 등에 신체를 낌(협착)’이 가장 많았으며, 산재사고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안전장비(혹은 장치)가 없었다’던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응답자의 97.2%가 작업시간 중에 사고를 당하였다. 대강이라도 안전교육을 받은 이주노동자들은 43.8%, 자신이 해야 할 작업에 산재사고를 당할 위험성이 있는지를 알고 있었던 경우는 8.6%에 불과하였다.

 이 빼도 박도 못하는 충격적인 수치가 굳이 대구·경북지역의 일터에 한정될 리는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일자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게 되든 관계없이 기꺼이 날아온다. 하지만 근로 계약 시 본인들이 하게 될 일이나, 본인들이 처하게 될 노동현장의 위험에 대해 심사숙고하기는커녕 필수적인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처음에는 언어 장벽으로 인해 내국인 노동자보다 일을 터득하기가 어렵고, 기계를 다룰 경우 안전교육을 받더라도 제대로 안전수칙을 숙지하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전장비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질병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2005년에는 컨테이너 작업장에서 태국 여성 노동자 8명이 ‘노말 헥산’에 중독되어 다발성신경장애, 일명 ‘앉은뱅이병’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들은 하루에 14시간 이상씩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유독성 유기용매로 완제품의 오물을 닦아내는 일을 했다.


왜 돈도 제대로 안주니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고용허가제 비자를 가지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고용허가제 비자를 상실한 (그래서 현행법상으로 불법 체류인) 미등록체류 이주노동자(이하 미등록체류자)들의 임금 실태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미등록체류자들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미등록체류자가 돈을 받으니 이걸 도로 토해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주노동자 전체가 불합리한 임금/노동형태를 강요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먼저 비자를 가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보자. 단순 업무 직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는 시급제를 적용받는다. 즉, 법정노동시간(주 40시간) 이외의 시간에 근무를 할 경우 잔업수당/초과수당을 꼬박꼬박 챙겨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하루 평균 11시간에 육박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만 대부분의 경우 초과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초과수당을 요구하더라도 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본급은 어떨까? 기본급 역시 같은 일을 하는 내국인노동자의 7~80% 수준이다.(2007년 기준 평균 77만 원) 이들에게는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다. 아무리 똑같은 일을 하고도 똑같은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우리 사회라지만, 그렇다고 차별임금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등록체류자의 경우 이주노동자와 미세한 차이가 있다. 이들의 신분이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이 고용될 때에는 공식적인 근로계약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시급제는 언감생심이며 한 달에 한번 월급을 받는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안정적인’ 월급제가 아니다. 오히려 월급제이기 때문에 아무리 추가노동을 많이 하더라도 초과 수당 한 푼도 더 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자를 가지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이들의 임금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가 본인들이 받아야 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등록체류자 신분상 단속이 염려되기 때문에 대부분이 야간에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오래 일한 미등록체류자의 경우 공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숙련노동자인 경우도 꽤 있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이다. 그러나 미등록체류자들은 계약을 거쳐 고용된 것이 아니므로, 보험과 같은 보호 장치는 전혀 보장받을 수 없다.


왜 이렇게 직장 옮기기가 힘드니

 내국인의 경우 직장을 다시 구하는 것은 힘들더라도 직장을 때려치우는 것이 힘들지는 않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마음대로 직장을 그만두고 옮길 수 없다. 21세기라기에는 생소한 제약이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은 오로지 고용허가제에서 인정하는 사유에 해당될 때에만 가능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사용자의 근로계약 해지, 휴폐업, 인권침해, 임금체불, 근로조건 저하, 상해, 근로조건 위반 등의 부당한 처우’ 등의 사유로 인한 사업장 이동만이 인정된다.

 문제는 사업장 변경 신청사유를 모두 이주노동자 본인이 증명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집도 절도 없고 한국말도 서툰 이주노동자가 혼자 힘으로 폭행이나 임금체불, 근로계약 위반을 증명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담지원센터에서 지원을 받아 겨우겨우 사업장 이동을 할 수 있는 경우가 간혹 일부 있을 뿐이다. 고용허가제가 요구하는 사업장 변경 신청사유는 사장님들 앞에서 그저 ‘하찮은 이유’로 전락하고 만다.

 천신만고 끝에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사업장 이동 절차’라는 큰 산이 하나 더 남아있다. 여기에서도 극심한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한다. 이주노동자는 고용지원센터에서 소개하는 곳으로만 재취업이 가능한데, 단순히 고용지원센터가 연결해주는 사업장목록 안에서 선택할 수 있을 뿐 어떤 사업장들에서 인력을 구하는지 등 전체적인 정보는 알 수 없다. 고용지원센터에서 제공받는 선택지 역시 3일간만 유효하며, 그 안에 결정을 내리지 못 하면 주어진 목록에 들어있는 사업장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기회는 박탈된다. 이 땐 다시 다른 지역의 고용지원센터를 몸소 방문해야 한다.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이 재취업 할 때 본의 아니게 팔도강산을 여행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그들은 처음 한국으로 올 때와 마찬가지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근로 조건을 고려해 볼 여유 같은 건 이주노동자에게 사치일 뿐이다.


왜 노조조차 인정해주지 않는 거니

 2005년 5월 3일, 이주노동자 노동조합(Migrant Trade Union, 이하 이주노조)이 서울·경인지역을 필두로 창립되었지만, 당시 노동부는 이주노조가 등록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까지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아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7년 2월 1일, 서울고등법원은 이주노조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포함해서 모든 노동자들이 한국 헌법과 노조법 하에서 노동조합을 결성, 가입할 수 있는 노동기본권을 가진다고 명확히 서술한다. 그러나 노동부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 대법원 상고2를 냈고, 4년째 상고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한국에 미등록 체류자는 약 18~19만 명으로 추산된다. 수적으로만 보아도 미등록체류자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굳이 사람 수를 따지지 않더라도, 미등록 체류자 역시 국내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는 점에서 마땅히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미등록체류자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주노조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이주노조의 설립 이유 자체를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주노동자들이 제조/건설 산업 등 본인들이 속한 산업에서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그들로만 구성된 노조를 설립하는 것은 내국인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당성을 갖는다. 우선 이주노동자들은 언어/비자 측면에서 내국인노동자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노동법이 아닌 출입국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비자문제는 이주노조에서 가장 중요한 기조로 삼고 강력하게 투쟁하고자 하는 문제이지만 기존 내국인 노조에서 같이 다루어지기에는 무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산업현장에서 내국인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 간의 불평등한 임금/근로환경 대우를 고려하더라도,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 노동자들과 독립적인 노조를 설립할 수 있을 때 그들의 권리를 보다 명확하게 주장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는 주저 없이 “이주노동자와 내국인을 동등하게 대우할 수는 없다”는 의견을 고수한다.


왜 우리를 ‘불법사람’으로 보니

 한국의 미등록체류자는 2002년 기준 28만 9천여 명으로 전체 이주노동자의 약 78%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정부가 미등록체류자를 한시적으로 합법화해 그 수치가 줄어들었으나, 2009년 1월을 기준으로 한 이주노동자 64만여 명 중 미등록체류자의 숫자는 총 18만여 명으로 대략 26-7%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있으면서 미등록체류자가 되는 것이 너무도 쉬운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주노동자가 미등록체류자가 되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1. 사업장을 이탈하는 경우
 고용허가제에서는 ‘특별한 사유 없이’ 입국일로부터 1년 이내에 근로계약기간 중 최초 근로를 개시한 사업장을 이탈하여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임금 상승이나 다른 취업활동을 목적으로 사업장을 이탈하거나, 사용자의 허락 없이 5일 이상을 무단결근하고, 소재를 알 수 없을 경우 불법체류자로 간주되어 처벌받는다.

 2. 사업장 이동 제한을 어긴 경우
 이주노동자들은 규정된 ‘사업장 이동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사유로 인해 최초에 계약한 사업장에서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하거나, 사업장을 3번 이상 이동하면 미등록체류자로 간주된다. 사업장 변경신청서에는 사업장을 이동하고자 하는 사유와 사업주의 날인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사업장 이동 사유는 이주노동자 스스로 증명해야만 한다. 회사의 도산이나 폐업, 노동관계법 위반 및 폭행 등의 인권침해, 상해 등 불가피한 상황이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이 역시 고용지원센터에서 확인할 수 없다면 사업장 변경승인이 되지 않는다.

 또한 모든 사업장 이동 절차는 3개월 이내에 끝나야 한다. 3개월은 생각보다 쉽게 흘러간다. 미국 발 금융위기가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지난 2007~8년에는 실제로 법적으로 규정된 기간 내에 사업장 변경을 하지 못해 불법체류자가 된 사례가 급격히 증가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기존에 2개월로 규정되어 있던 사업장 변경기간을 3개월로 늘려주었지만 그뿐이었다. 노동부 지침에 따르면 산재, 질병, 임신, 출산 등 불가피하게 취업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해당 기간만큼 취업알선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지침’일 뿐 법적인 사항이 아니다. 일선현장에서 구직기간 3개월 규정은 이주노동자가 처한 상황에 상관없이 칼 같이 적용된다.

 3. 체류연한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는 경우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체류하여 근무할 수 있는 근로계약기간은 1년이며, 근로기간을 갱신해 고용허가기간을 최대 3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 기간이 끝나면 이주노동자는 반드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며, 이후 한국으로 단 한 번 재입국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최대 3년으로 기간이 정해져 있다. 만약 근로계약기간 1년이 지난 이후 근로기간을 갱신하지 않거나, 고용허가기간을 지키지 않고 한국에 남아 그대로 체류하면 미등록체류자로 간주된다.

 이처럼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을 옮길 특별한 사유에 해당되지 못하거나, 단지 한국에 남아 좀 더 일을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도 너무도 쉽게 한국에 더 이상 등록되지 않은 미등록체류자로 바뀌어 단속에 쫓기게 된다.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려도 없이 고용허가제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항들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우리는 이들에게 ‘불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왜 우리는 보호받지 못하는 거니

 200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20살 이상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노동자는 한국에서 동성애자, 미혼모에 이어 세 번째로 차별받는 집단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냉혹한 시선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시선이 미등록체류자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더욱 극단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고 내뱉곤 한다. 몇 년 전에는 ‘불법체류자 추방운동본부’라는 한 모임에서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앞 불법체류자 단속추방지지 집회를 주최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촉구하면서 ‘불법체류자들이 저지르는 범죄, 국내 일자리 잠식 등의 문제’를 그 근거로 내세웠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 그 중에서도 특히 미등록체류자는 곧 범죄자이며 한국의 사회적 문제를 낳는 주된 요인이자 얼른 추방해서 없애야 할 문제의 씨앗으로 인식된다. 그들은 미등록체류자를 ‘불법’을 저지른 사람으로 인식하고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대우를 정당화한다. 이처럼 미등록 체류자는, 한국에 들어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불법체류’ 상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예비범죄자 취급을 받기 일쑤다. <외국인 100만 시대, 그들만의 무법지대>(《SBS》 2008년 방영)와 같은 프로그램도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불법체류자라는 단어가 갖는 폭력성을 조금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체 어떤 사람이 ‘불법’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미등록체류자들은 단지 출입국사무소에 등록되지 않았을 뿐 결코 범죄자가 아니다. 이들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 문제를 가지고 있는 존재도 아니며, 그렇게 쉽게 ‘불법’이라는 딱지를 받아도 괜찮은 존재도 아니다. 미등록체류자들이 체류연한을 초과하여 체류하거나 유효한 비자를 발급받지 못하는 것은 한국에서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 했기 때문이지 결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있다고 해서, 자국에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 생각에 본국 임금의 5배 이상을 받을 수 있는 한국을 떠나지 못한다고 해서 이들이 ‘위험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등록체류자가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주노동자가 사회를 위협할 존재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그건 너무 슬픈 판단이다.

 이들은 오히려 한국에서 정해 놓은 이주노동자 체류 규정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적 보호망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퇴직금을 받을 수도, 상해보험에 가입할 수도 없다. 아무리 산재를 당하고 폭력적인 대우를 받아도 이들은 혹시나 미등록체류자로 걸려 강제출국 조치를 당할까봐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따라서 어떠한 대우도 고스란히 개인의 문제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들을 등록되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하고서 정부는 더 이상 미등록체류자를 보호할 어떠한 사회적인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비보호 아래 이들은 사람으로서도 인정받지 못한 채 ‘불법사람’이 되고 만다.


정부는 대체 뭘 하고 있니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작된 이후 2010년 7월에는 처음으로 고용허가제의 비자로 온 이주노동자들의 체류기한이 만료되기 시작했다. 고용허가제 체류기한이 만료되는 이주노동자는 지난해 5,243명에서 올해는 34,944명, 내년에는 6만 7천여 명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2010년 12월 기준을 기준으로 한 6년 체류만기자 중 미등록 체류율은 36%에 이르며 앞으로도 상당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등록체류자로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너무도 냉혹하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에서는 “불법체류를 예방하기 위해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사업장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미등록체류자를 고용하다가 적발될 경우에는 해당 사업장에 대해 1차적으로 미등록체류자 고용을 중단시키고, 3년 이내에 다시 적발될 경우에는 3년 간 외국인 고용 자체를 제한할 예정이다. 또한 고용부는 미등록체류자 고용사업장에 대한 관계부처 합동 특별단속을 수시로 실시하기로 했다. 국가별로 이주노동자 도입 쿼터를 결정할 때에는 해당 국가 이주노동자의 미등록체류자 비율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수치가 높은 국가에 대해서는 송출 중단3도 추진하는 등 불법체류 예방에 대한 송출국가의 책임도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5, 6월에 외국 국적 동포를 고용한 음식점과 건설현장을 중점 점검대상 사업장으로 선정하여 절차 이행 및 건설업 취업등록제 준수 여부 등을 집중 점검하고, 위반사항이 발견될 경우 시정명령, 과태료 부과, 고발조치 등 강력한 불이익 조치를 내릴 방침이다. 법무부는 2012년까지 미등록체류자 비율을 총 체류외국인의 10% 선으로 낮추겠다는 목표까지 제시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국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미등록체류자에게 선택지와 대안을 내놓기보다는 이들에 대한 ‘단속’에 더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아래 내용은 정부의 집중단속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Q: 현재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을 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 생활이 지금 어떤가요?

A: 너무 무섭고 힘든 상황이에요. 어디 가지도 못하고 아플 때 병원도 못가고 집에서 물건 사러 가게에 잘 가지도 못해요. 일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일자리도 구하러 다니지 못해요. 쉘터(Shelter)나 친구 집이나 교회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집에, 식당에, 공장에 마음대로 들어가서 단속해요. 예전보다 지금 너무 심하게 단속하기 때문에 아무런 계획도 세울 수 없고 언제 단속에 걸릴지 몰라요. 하루 지나고 나면 오늘 안 걸렸다, 오늘까지는 한국에 살았다고 생각해요. 다음 날 해가 뜨면, 모든 인생에서 해가 뜨면 새로운 계획이나 꿈이 생기는데 지금 이주노동자들은 아침 오면 더 힘들어요. 밤만 계속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2009. 11. 7 이주노동자권리지킴이 뉴스레터 2호 中 이주노동자 ‘람’ 인터뷰 일부)



 정부는 지금까지 단속정책을 통해 공포심을 유발함으로써 이주노동자는 언제 어떤 이유로든 비자를 잃을 수 있으니 잠자코 일만 하라는 식으로 전체 이주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해 왔다. 이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환경, 산업재해 등에 시달리며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의 지위를 고착시킨다. 단속정책을 통해 자행되는 인권침해 문제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에 따르면 2003년 이후 단속정책으로 사망한 이주노동자는 공식적으로만 30명에 이른다.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가 사망한 이들도 많았으며, 단속 중 화재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수색영장도 없이 공장과 거주지를 무단 침입하는 경우도 있었고, 영장 없이 구금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출입국사무소는 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또한 정부가 이주노조의 간부를 대상으로 하여 표적단속4을 벌여, 대다수의 간부들은 강제추방을 당해야만 했다.

 정부의 강제적인 추방정책은 체류기간이 만료된 이주노동자에게 어떠한 선택지도 제공해주지 못한다. 단속은 결코 미등록체류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도 없다. 오히려 미등록체류자는 정부의 단속과 강제추방의 위험에 놓여있기 때문에 더욱 보호받을 수 없으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위험한 일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여전히 한국에 남아있는, 그리고 앞으로 한국에서 살아가야 할 미등록체류자들에게도 강제추방이 아닌 또 다른 선택지는 주어질 수 없는 것일까. 단지 좀 더 일을 하고 싶을 뿐인 이들에게는 더 이상의 결정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수십만의 ‘불법사람’을 쫓아내기 위한 정부의 단속은 계속되고 있고, 이주노동자들은 어떠한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는 사회 여기저기에서 내몰리고 있다.

 
  1. 고용허가제 이전에 1992~2005년까지 시행된 외국인 인력 정책. 국내에서 1년의 연수과정을 거쳐 2년간 취업할 수 있으나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노동 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등 악명 높은 제도였다. [본문으로]
  2. 항소심의 종국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법령의 해석적용 면에서 심사를 구하는 불복신청 [본문으로]
  3. 해당 나라에서 더 이상 이주노동자를 한국에 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 [본문으로]
  4. 이주노조의 간부, 문화 활동가 등 특정인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벌이는 경고성 단속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