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투쟁 1800일, “정치권 도움 없이도 승리하는 투쟁 만들 것”

재능교육지부, 정치의 계절, 대선의 바람에도 ‘마이웨이’

 

 

 

특수고용노동자 투쟁의 상징이 된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의 투쟁이 1800일을 맞았다.

이명박 정권 출범과 동시에 노숙 농성에 돌입한 이들은 꼬박 5년을 길 위에서 살았다. 이명박 정권은 집권 5년을 거쳐 임기 말에 들어섰지만, 이들의 투쟁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대선 국면을 맞아 야권에서는 특수고용대책을 내 놓고 있지만, 길게는 10여 년간 지속 돼 온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 요구를 그대로 담아내기란 역부족이다. 때문에 재능교육지부는 노동계까지 몰아친 문재인, 안철수 바람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는 구호가 남발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여전히 ‘투쟁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며 제 갈 길을 간다.

그래서 가끔 고집스럽다는 소리도 듣지만, 그것은 노무현, 이명박 정권까지 숱한 탄압을 경험해보지 않아서다. 1800일의 투쟁 속에서 18대 대선 국면을 만난 재능교육지부는 여전히 정치권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승리하는 싸움을 동지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한다.


“정치권 개입 없이도 승리하는 투쟁 보여주고 싶다”

대선 시기는 노동계를 대하는 정치권의 태도를 바꾼다. 지난 19일, 재능교육지부는 안철수 캠프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안 캠프가 발표한 특수고용노동자 정책 공약이, 지난 10년의 특수고용 투쟁을 후퇴시켰다는 이유다.

학습지노조와 재능교육지부의 안철수 캠프 항의 방문 다음날, 안철수 캠프는 보완된 노동공약을 발표했다. 특수고용노동자 정책과 관련해서는 기존 ‘특수고용종사자협회와 같은 별도 단체결성을 통한 공동문제 해결보장’에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 보완’으로 수정했다. 문재인 캠프의 전순옥 선대본부장도 최근 재능교육지부 농성장을 찾았다. 앞서 문재인 후보의 경우,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와의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안철수 후보의 공약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10년 투쟁을 후퇴시킨 정책이었어요. 얼마 전 수정된 공약을 발표했다고 하지만, 그 것 역시 구체적 대책 없는 달랑 한 줄짜리 공약이죠. 문재인 후보의 경우는 특수고용대책회의와의 면담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며, 당선 된 다음에 하겠다고 했어요. 전순옥 선대본부장은 문 후보를 믿고 지지해 달라지만, 도대체 그 사람들의 어떤 부분을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선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정권이 교체되면 세상이 바뀔 듯한 분위기지만, 재능교육지부는 대선 후보와도 싸움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5년간의 이명박 집권기간 이전부터, 정권과의 싸움을 이어온 사람들이다.

“17대 대선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도 출마했는데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여론이었어요. 노 대통령이 당선된 건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덕이 컸죠. 우리는 2000년에 회사와 단협을 체결했고. 2002년 단협 갱신을 해야 했어요. 근데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2002년, 2003년, 2004년까지 3년간 단협 쟁취를 위해 투쟁해야 했어요. 특히 2003년도는 열사정국으로 많은 동지들이 죽은 해였고요.

그 상황에서 친노 인사인 문재인 후보에게 무엇을 느낄 수 있겠어요. 그에게는 깨끗하고 청렴한, 메시아 같은 상징이 덧씌워졌지만 그것을 우리가 만든 허상에 불과해요. 이명박 정권으로 노동 상황이 퇴보했다는 간부들의 세뇌 교육과, 단식과 고공농성에도 해결되지 않는 패배감이 만들어 낸 것이죠. 솔직히 정권이 교체되면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100%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기대도 하지 않아요”


재능교육지부가 정치권과의 협력 관계를 꺼려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간 숱한 투쟁사업장에서의 정치권의 개입과, 그로 인한 현장 상황을 직접 봐 왔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나서야 해결되곤 하는 투쟁사업장으로 인해, 노동진영의 투쟁 기운이 빠져 있는 것 역시 영향을 끼쳤다.

“동희오토, 기륭전자, 현대차 비정규직, 한진중공업까지 모두 정치권이 나서서 해결했어요. 하지만 정치권의 입김으로 노사 합의가 타결된 사업장 중. 모든 문제가 마무리 된 곳은 없어요.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투쟁 때만 해도 그래요. 진보신당 까지도 와서 중재하려고만 했어요. 적어도 진보 정당이라고 한다면,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양보된 중재안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를 압박해요.

그래서 너무 답답해요. 재능교육지부의 투쟁이 최대 모범답안이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예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우리처럼 5년을 싸워도 원칙이 있으면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1800일의 장기투쟁, 노조가 고집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

길고 긴 투쟁 기간, 노조는 간간이 회사와 교섭을 해 왔다. 하지만 노사 대화는 번번이 결렬됐고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다. 올 여름까지도 재능교육 노사는 교섭을 벌였으며, 회사는 8월 28일 노조 측에 최종 교섭안을 전달했다. 하지만 노조는 교섭안이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회사 측의 최종 교섭안은 언론 등에 뿌려졌고, 노조는 다시금 ‘강성 노조’로 규정됐다. 기약할 수 없는 투쟁 장기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다. 하지만 5년을 싸워온 노조에게, 그 최종 교섭안은 곧 ‘패배’였다.


“그 최종안을 받는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없이 현장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적어도 조합원들에게 ‘우리가 노동조합을 인정받았고, 5년 동안 싸워서 단협을 체결했다. 부당영업 문제도 없애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우리 다시 한 번 노조를 조직해 보자’라고 이야기 하는 지점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것조차 없다면 우리 5년의 투쟁과,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희는 부귀, 영화 누리는 것은 바라지도 않아요. 다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역사에 ‘장기투쟁 끝에 특수고용노동자도 노동자라는 인정을 받고 승리해서 현장에 복귀했다’라는 한 줄은 남기고 싶어요. 그러면 이후에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우리처럼 노조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장장 1800일 동안 단식, 노숙농성, 1인 시위 등 해보지 않은 투쟁이 없다. 그 지치고 힘든 시간은, 가끔 옆에 있는 동지까지도 상처로 만들어버린다. 같이 투쟁하던 동지들이 속속 현장으로 복귀할 때, 기쁘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하다. 그야말로 온갖 복잡미묘한 관계와 감정을 겪어내야 했던 1800일이다.

“투쟁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현장으로 복귀해 다시 일상생활을 하게 되면, 그 5년 전의 일상을 찾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특히 요즘 들어서는 주변의 충고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해요. 지적을 받으면 울컥해서 참지 못하고요.

사실 힘든 기간을 함께 오래 겪은 주변사람들부터 사이가 벌어지곤 해요. 1000일을 넘겼을 때가 고비였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맞부딪히며 아픈 곳을 건드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기간을 견뎌내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 만큼 연대 단위들도 모여들었잖아요. 그리고 그 동지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도 커요. 패배하고 현장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기대요. 그래서 보답해야 해요. 포기할 수가 없죠”


재능투쟁 1800일을 맞은 23일 오전,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는 100여 명의 연대단체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본사 앞 집회를 개최한 뒤, 시청 앞 재능교육지부 농성장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유성기업지회, 현대차비정규직지회, 골든브릿지지부, 용산범대위, 강정마을 주민, 김소연 노동자대통령 후보 등 많은 연대단위가 재능교육지부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평택 송전탑 위,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문기주 쌍용자동차지부 정비지회장의 목소리도 울려퍼졌다.

“1800일의 투쟁을 이어온 재능 동지들을 존경합니다. 자본과 정권을 향해 투쟁하며, 노동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투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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