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34대가 싣고온 희망, 철탑위로 쏘아올렸다

2013.01.07 14:29

한겨레 조회 수:2579

버스 34대가 싣고온 희망, 철탑위로 쏘아올렸다

등록 : 2013.01.06 21:00 수정 : 2013.01.06 22:01

 

“고마워요”…“힘내세요” 3일 오후 울산 북구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정문 앞 철탑 위에서 농성중인 최병승씨와 천의봉씨가 하트를 그리자, 농성장을 방문한 ‘다시 희망만들기 희망버스’ 참석자들이 역시 하트를 그려 보이며 인사하고 있다. 울산/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르포 2013년 희망버스 탑승기

대학생·직장인 등 시민들 동참
“선거뒤 무기력증 시달렸는데…
여기 오니 가슴이 뻥 뚫려요”

울산 현대차 농성철탑 거쳐
부산 한진중서 추모제까지

5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대한문 앞은 토요일인데도 분주했다. 버스 12대가 대한문 앞부터 광화문 쪽으로 길게 줄지어 섰다. 사람들도 버스에 오르려고 줄지어 섰다. 영하 12도의 추위를 묵묵히 견디며 탑승을 기다렸다. 인터넷 등으로 사전에 탑승을 신청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신청 안 하고 왔는데 버스를 탈 수 있나요?” 주최 쪽은 흔쾌히 응했다. 부랴부랴 버스 한 대를 더 불렀다.

오전 10시께, 버스는 남쪽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서울 여의도와 사당동에서 1대씩의 버스가 합류했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남도 등에서도 19대의 버스가 대열에 끼었다. 2013년 ‘희망버스’의 첫 장정이었다. 모두 34대의 버스에 1600여명이 동승했다. 기차와 자가용 등 개인 교통수단을 이용한 이들까지 더하면 참가자는 2500여명에 이르렀다.

“사람이 적을까봐 걱정돼서 ‘나라도 가야지’ 하는 생각에 왔는데, 차가 모자랄 정도로 호응이 많네요.” 서울지하철에서 정비사로 일하는 김영준(54)씨가 웃었다. 김씨는 재작년 ‘희망버스’에도 동참한 적이 있다. 당시 연인원 1만9000여명이 6월부터 10월까지 다섯 차례 진행된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한진중공업 등을 찾았다. 노동 문제에 대한 평범한 시민들의 광범위한 연대의식을 드러낸 일대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대선이 끝난 2013년 벽두, 그 희망은 다시 확산될 수 있을 것인가. 버스에 오른 이들이 가슴에 품은 질문이었다. “선거 끝나고 무기력증에 시달렸어요. 그동안 사회문제에 무관심했다는 자책도 했죠. 더불어 사는 게 뭔지 배우고 싶어 희망버스에 탔어요.” 정치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손어진(27)씨는 이날 희망버스 12호차에 올랐다. 그는 바로 옆에 앉은 18대 대선 무소속 후보 김소연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사회적 실천에 동참하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새해 희망버스는 2011년의 그것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2011년에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안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게 계기가 됐다. 김 지도위원의 농성장은 2003년 김주익 한진중공업지회장이 목을 매 숨진 곳이기도 했다. 지금도 세상을 먼저 떠난 이와 하늘에서 외롭게 싸우는 이가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 최병승(37)씨 등이 82일째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국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 최강서(35)씨는 지난달 21일 노조탄압 중단 등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을 맸다.

절박감은 더 높아졌다. 2011년 희망버스가 트위터 등을 통해 번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원동력으로 삼았다면, 새해 희망버스는 민주노총 및 시민사회단체가 준비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민주노조를 지켜야 한다는 시민·사회·노동단체 진영의 절박감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시민들의 호응도 뜻밖에 컸다. 주최 쪽은 “새해 희망버스 참가자의 3분의 1 정도가 일반 시민”이라고 밝혔다.

첫 도착지인 울산으로 향하는 희망버스 12호차에는 모두 46명이 탑승했다. 대학생, 직장인, 비정규 노동자, 노조활동가, 공무원, 고등학생 등이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자기 소개’가 시작됐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공부하는 엄마’라고 김혜영(52)씨는 인사했다.

“농성하는 분들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죠. 자본 중심의 세상에서 배제되고 소외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바로 ‘내 문제’입니다.” 김씨는 대학생 딸을 데리고 희망버스를 탔다.

참가자들은 농성자들에게 전달하는 ‘희망편지’도 썼다. 누군가 편지에 적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오후 4시30분께 버스가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공장 명촌주차장 송전철탑 앞에 도착했다. 농성중인 최병승(37)씨는 “힘들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철탑에는 ‘무단 점유를 풀라’며 법원이 명령한 ‘고시장’이 붙어 있었다.

1시간여 집회를 마치고 버스는 더 남쪽으로 내려갔다. 저녁 7시40분께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앞에 도착했다. 주최 쪽은 돼지국밥과 어묵을 준비했다. 참가자들은 배식을 받느라 줄을 지었다가 삼삼오오 모여 길바닥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저녁 8시 추모문화제가 시작됐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냉동실에 너를 눕혀놓고 꾸역꾸역 밥을 먹는 우리는 이 겨울이 참 춥다. 이력서에 붙은 사진은 영정이 되고, 다시 상복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며 눈물을 삼켰다.

추모제가 열린 조선소 앞으로 영하 4도의 공기를 품은 바닷바람이 쉼없이 들이쳤다. 참가자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밤 10시40분께 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분향소와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희망버스는 올해 정국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관계자는 “적어도 한진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15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철회하지 않으면 희망버스는 계속 부산으로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계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처지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압박이 될 것이라고 참가자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밤 12시를 넘긴 뒤에야 버스는 북쪽을 향해 되짚어 올라왔다. 서울에서 출발했던 13대의 희망버스는 6일 새벽 5시께 대한문 앞에 도착했다. “오길 잘했어요. 자유를 맛봤어요. 가슴이 뻥 뚫리면서 희망이 솟아났어요. 앞으로도 같이 아파해야겠어요.” 12호차에 타고 있던 손어진씨가 말했다. 희뿌옇게 터오는 먼동을 배경삼아 사람들은 줄지어 인사를 나눴다.
 
부산/김광수 김규남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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