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을 아시나요?

2012.12.04 09:48

경향신문 조회 수:5496

[손호철의 정치시평]김소연을 아시나요?

역시 안철수 후보는 달랐다. 국회의원 수 축소 등 구체적 제안들은 문제가 많고 개악적 요소가 강했지만, 전격적인 후보사퇴가 보여주듯이 진정성만은 증명된 셈이다. 안 후보의 사퇴로 이번 대선은 오랜만에 보수 대 자유진보연합세력의 1 대 1 구도가 되어 가고 있다.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예상대로 야권 단일화를 위해 사퇴했다. 민주통합당과 교감이 있는 심 후보와 달리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문 후보가 연대를 제의할 경우 기꺼이 사퇴하겠지만 종북이미지에 도덕적으로도 만신창이가 된 통합진보당에 손을 내밀 리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후보는 후보 등록을 했다. 그러나 그동안 입만 열면 정권교체와 야권연대를 역설해온 것이 사기가 아니라면, 그도 TV토론 등 선거국면을 최대한 이용해 지지율을 높여 야권연대를 압박하다가 문 후보가 응하지 않을 경우 적당한 때에 “정권교체를 위해 후보를 사퇴한다”는 살신성인의 모습을 연출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정권재창출이냐 아니면 정권상실이냐가 달려 있던 2002년 대선과 2007년 대선은 말할 것도 없고, 사상 최초의 여야간 평화적 정권교체와 최초의 자유주의정권 출범이 달려 있던 1997년 대선에도 권영길이라는 ‘제3의 진보후보’는 선거를 완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보후보들이 사라져버렸다. 하다못해 야권단일화냐, 독자후보냐라는 논쟁조차도 공론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만큼 정권교체에 대한 시대적 절박함이 1997년 대선 때보다 더 크기 때문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정당정치, 특히 진보정치라는 면에서, 한국정치는 ‘권영길 이전’으로, ‘1997년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정치가 그만큼 이념적으로 다시 협소해지고 있다는 의미로서 우려되는 바가 크다.

이는 정치공학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주목할 것은 승패가 뻔했던 2007년 대선은 그렇다고 치고, 1997년과 2002년 대선의 경우 진보후보의 독자출마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세력이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진보후보가 반한나라당 표 중 약 3%의 지지를 갉아먹었지만 진보후보의 존재가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자유주의 후보에 대한 색깔론을 중화시켜 이들이 훨씬 많은 중도세력 표를 얻도록 만들어줬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미 있는 왼쪽의 진보후보가 사라져 그렇지도 못하게 생겼다. 이정희 후보가 존재하지만 완주도 불확실한데다가 이미 종북과 도덕적 파탄 이미지로 그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같은 사실들과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김소연 노동자 대통령 후보이다. 그는 일반인에게는 무명의 인물이지만 노동계에서는 전설적인 투사이다. 노무현정부가 노동법을 개악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던 바로 그 때, 그는 기륭전자 노조위원장으로 94일간의 단식을 비롯해 무려 1895일간의 처절한 농성을 주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얻어냈다.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던 그는 당이 이정희 대표의 주도 아래 유시민계의 국민참여당과 통합하자 반노동적인 자유주의 세력과 같이 할 수 없다며 탈당을 했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운동이 최근 도덕적 파탄으로 사실상 종말을 고하자, 좌파 노동 현장 활동가들의 지지를 받아 이번에 노동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것이다(김순자라는 또 다른 노동자 후보도 있지만 그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진보신당의 방침을 깨고 탈당해 개인적으로 출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대중적 진보정치인으로 잘 알려진 심상정, 이정희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1% 미만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무명의 노동자가 많은 지지를 얻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1997년, 2002년, 2007년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진보후보의 기치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아니 이미 실패한 진보정당의 한계를 넘어서 노동자 대통령, 노동자정당이라는 보다 뚜렷한 기치를 통해 새로운 좌파정당의 씨앗을 뿌려준다는 의미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묻고 싶다. 김소연을 아시나요?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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