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건강은 과연 안녕하십니까?
[기획연재] (2) 성서 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 자원 활동가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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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린 sungseo@jinbo.net
[편집자 주] 저임금 장시간노동의 대명사인 성서공단. 성서공단노조, 성서공대위는 10년이 넘게 성서공단 노동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최근 금속노조 대구지부, 민주노총 대구본부 등과 함께 ‘성서공단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이 발족했다.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과 노동, 그리고 애환과 희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성서공단, 노동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격주 수요일마다 <뉴스민>에 약 20회 연재한다.
지난 5월 25일 ‘성서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 10주년’ 행사가 있었다. 진료소와 인연이 닿은 이들이 모여 지난 10년과 앞으로 10년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10주년 행사를 위해 공단거리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 건강권 설문조사를 하며 이주노동자를 만나고, 10년을 함께 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좌담회 형식으로 10년을 돌아보는 자리도 가졌다. 그리고 10주년을 진행하는 행사자리에 많은 이주노동자가 함께 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진료소 창 너머 바라보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떠할까? 이주노동자들은 이 진료소를 어떻게 생각할까? 복잡미묘하고도 수줍민망한 고해성사를 지금부터 하고자 한다.

“위험한 순간도 많았던 것 같아요. 베트남 T씨의 경우 임신을 했는데 자궁 외 임신이라는 거예요. 결국, 나팔관 하나를 잘라냈죠.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자마자 사산을 했죠. 이야기를 차마 전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이야기했어요.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어떻게 해야 할지 감당이 되지 않았어요.” -「진료소 10주년 좌담회 내용 中」

나는 그저 호기심에 처음 진료소 문을 두드렸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대학 새내기로 한 학기를 보내다 학과생활이 점점 지겨워질 때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진료소 봉사활동이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나와는 달리 내 또래의 이주노동자들은 단지 ‘호기심’이 아닌 ‘생존’을 위해 이 한국 땅에 건너온다. 그리고 말도 통하지 않은 낯선 땅에서 그들의 목숨을 건 사투는 시작된다.

“하루 12시간 주야맞교대 하면서 몸이 좋지 않았는데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어요. 일이 바쁘니까 병원에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야간 들어가기 전에 성서무료진료소를 왔고 여기서 진료의뢰서를 받아서 회사에 겨우 이야기하고 병원에서 검사를 했어요. 폐에 물이 차서 늑막염이 있고 신장의 혈관도 안 좋고, 한쪽으로 폐에서 노란 물이 나오기도 했어요. 결국, 그 형님은 병원에서 제대로 진료도 받지 못하고 본인이 나라에 가야겠다고 해서 나라도 돌아갔어요.”
-「진료소 10주년 좌담회 이주노동자 증언 내용 中」
지난해 말 성서공단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미등록노동자들도 일하다 다치면 산재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해 ‘몰라요’가 63.5%, 이주노동자들이 최근 2년 이내에 건강검진을 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56.6%, 이주노동자들의 건강보험 미가입 비율은 50.2%에 달하고 있다. 최근 1년 동안 병원 가고 싶은 적 있는데 못 갔던 경우는 32.5%나 있었으며, 그 이유로는 54.7%가 시간이 없어서, 그다음이 돈이 없어서를 답했다.

성서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에서 일을 하면서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많은 모습을 본다. 분명히 다섯 개의 손가락이 다 있었는데 어느 날 3개의 손가락이 잘려 버린 손, 버스도 다니지 않는 머나먼 산골짜기에서 겨우겨우 시간을 내서 택시 타고 버스 타고 2시간여에 걸쳐 진료소에 진료하러 왔지만, 2차 진료를 권할 때 ‘일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없다’며 쪼그라드는 긴 한숨 소리,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약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고 주야간 맞교대 때문에 아파도 진료소에 오려면 2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피곤이 서린 시커먼 얼굴 아래 가슴팍에 뭉텅이씩 쥐어든 약봉지...

그렇게 그들과 맞닿아 있지만, 난 여전히 생소한 다른 나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을’이 되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용돈을 벌려고 알바시장에 던져진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진료소에서 만났던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건, 공포 그 자체였다. 혼란스러웠다. 무엇을 위한 노동이고 누구를 위한 돈인지, 사람 위에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어쭙잖게 ‘이게 답이다.’라고 외칠 깜냥은 되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난 자원봉사가 아닌 자원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이 무료진료소를 한번 오는 것도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고 찾아온다는 것이 참 맘이 안 좋아요. 우리가 이주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를 한다고 홍보하고 포스터를 공단에 부착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 정보도 없고, 언어의 문제도 크고 한 상황 속에서 많은 고민 끝에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10년 동안의 과정은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진료소 10주년 좌담회 내용 中」


내 조그만 생채기에도 온갖 앓는 소리 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가족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크나큰 눈망울들. 나는 오늘도 그들에게 물어본다. 당신들의 건강은 과연 안녕하십니까?

혜린 sungseo@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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